오늘 소개할 책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2016년 출간 이후, 2018년 개정판으로 재출간되며 작가의 말과 퍼포먼스 사진이 추가되어 더욱 깊은 울림을 전했다. 한강 특유의 시적 문체와 실험적인 형식은 독자에게 독특한 독서 경험을 선사하며,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부커상 운영위원회는 『흰』을 **“애도와 부활, 인간 영혼의 강인함에 대한 책”**이라고 평했다.
✨ 흰 것들의 목록에서 시작되는 여정
작품은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흰 것들에 대한 65편의 짧은 글을 통해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의 존재와 기억을 소환한다. 1장 <나>, 2장 <그녀>, 3장 <모든 흰>으로 나뉜 구성은 흰색이라는 상징적 이미지 속에서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한다.
✨ 흰색에 담긴 애도와 재생의 이미지
소설 속 흰색은 순수함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과 상실의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p10)라고 쓰며,
언어를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고 이를 애도의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특히 <눈>, <진눈깨비>, <만년설> 등 눈에 관한 글들은 흰색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눈은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세상을 덮어 왜곡하고 사라지는 존재다.
작가는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p64)이라고 묻는다.
이는 눈에 대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도 흰색의 복합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이어지는 삶
한강은 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삶과 교차시키며, 죽은 언니에게 자신의 삶을 빌려주듯 서사를 이어간다.
1장(나)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에 관한 이야기로 100% 실제이며, 2장(그녀)와 3장(모든 흰)은 죽은 언니에게 빌려준 내 삶과 다시 나로 돌아와 내가 그녀와 작별해야 하는 순간을 그렸다”는 작가의 북콘서트 발언은 작품의 자전적 성격을 더욱 강조한다.
또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집필된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재건된 도시의 모습과 개인의 상처와 재생의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이는 과거의 상처 위에 새로운 삶을 쌓아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 실험적 형식과 시적 문체
『흰』은 소설, 시,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함축적이고 시적인 문장들은 독자에게 천천히 음미하며 읽도록 유도한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해설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세속적 기도서”**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살아가요”**라는 문장으로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다.
✨ 결론 – 흰 것들 속에서 삶을 껴안다
『흰』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동시에 그 안에 깃든 강인함을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흰색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애도와 재생,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색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과거의 폐허 위에 새로운 삶을 쌓아가는 과정은 독자에게도 내면의 힘을 찾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언어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시적 산문으로 독자와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흰』을 읽고 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책의 첫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마치 흰 눈처럼 조용히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존재와 부재, 애도와 희망이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